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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일리안] "굴뚝없는 관광산업, 도시 훼손 심각…정부 규제 필요"
    [데일리안]  "굴뚝없는 관광산업, 도시 훼손 심각…정부 규제 필요" 관광지와 지역주민에 혜택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관광’ 돼야​2016-09-21 17:09​ ▲ 20일 오후 서울관광마케팅의 주관으로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된 2016 서울공정관광 국제포럼에서 좌장을 맡은 쑤징 UNWTO 아태국장이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   서울시가 유엔세계관광기구와 함께 개최한 ‘서울공정관광 국제포럼’에서 대도시의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서는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일 오후 서울관광마케팅의 주관으로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된 ‘2016 서울공정관광 국제포럼(SIFT: Seoul International Fair&Sustainable Tourism Forum)에 참석한 크리스티나 캠프 투어리즘 와치 편집장은 ’대도시와 지속가능한 관광‘에 대한 발표를 하며 “예전에는 관광을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도시가 관광지 주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캠프 편집장은 “대도시 관광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관광객 숙박업소가 지역 주민의 거주지를 위협하는 문제부터 일자리 품질 문제, 호스트와 게스트의 관계, 항공과 기후변화문제, 소음공해, 교통이나 대기오염, 명소 방문객 과밀, 폐기물 문제까지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당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릴 적 살던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던 것을 예시로 들며 “서울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이 관광도시로 발전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 일어나면 빈곤층이 교외로 밀려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가 번성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고,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관광객이 몰려 지역 주민들의 터전이 관광지가 되고 주민들의 주거 환경이 위협받는 현상이다. 두 현상 모두 지역 주민의 주거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서울시를 비롯한 전 세계의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울러 “관광객이 몰리는 것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관광객 때문에 마을이 변한다고 생각하기 쉽다”며 “조용한 거리에 카페가 들어서고 밤에 길거리가 시끄러워지는데 정부의 규제가 없으면, 주민들이 관광객과 외국인에게 반감을 품고 거주 지역의 출입을 통제하는 등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캠프 편집장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에서는 무분별한 관광지화를 막기 위해 주택상업적이용금지법이 시행됐다. 베를린에서 2만8000여 채의 아파트가 관광용으로 사용된다는 잠정집계에 정부에서 50% 이상의 면적은 집주인이 사용하고 있을 것, 월세는 지역 평균가보다 낮을 것 등의 숙박 규제를 설정한 것이다. 그는 “또다른 규제로는 지역고유특색유지법이 있다”며 “아파트 두 채를 터서 하나로 만드는 등 럭셔리 현대화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이것이 유연하게 적용돼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전략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이 완벽한 예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할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캠프 편집장은 “관광으로 인한 도시 성장은 좋은 일이지만 그 이면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창출한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인지, 계절성 일자리는 아닌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 함께 참석한 김철원 경희대 교수는 “천혜의 자원이 풍부하고 근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서울의 관광자원을 안전하고 지속가능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며 “2017년 UNWTO가 정한 ‘지속가능한 관광의 해’를 맞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대중관광이 대안관광, 책임관광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데일리안 = 이선민 기자] 이선민 기자(yeatsmin@nate.com)​
    2016-09-28 조회 : 104
  • [연합뉴스] "착한여행 모색"…20∼21일 서울공정관광 국제포럼
    [연합뉴스] "착한여행 모색"…20∼21일 서울공정관광 국제포럼  2016/09/19 11:15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관광객과 관광지 주민, 관광사업자 모두가 공정하게 혜택을 보는 관광 모델을 고민하는 '2016 서울공정관광 국제포럼'(SIFT)이 20∼21일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관광마케팅㈜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세계관광기구(UNWTO) 후원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국제관광객이 12억명을 넘어섰고 2030년 18억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정책과 실천방안을 모색하려 기획했다.  쑤 징(Xu Zing) UNWTO 아태국장, 해럴드 굿윈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 교수를 비롯해 홍콩, 독일, 일본, 태국, 인도 등에서 전문가와 학자, 활동가 등이 참석한다. 이틀 동안 두 개 세션으로 나눠 전문가들이 발표·토론을 한다.  첫째 날 열리는 1세션은 도시 관광의 팽창과 함께 대두된 환경 파괴와 지역 주민의 피해 등 문제를 베를린 홍콩 등 대도시 사례를 살펴보며 대안을 찾는다. 둘째 날 2세션은 농촌여행, 생태관광 등 마을여행이 대도시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보고, 지역 간 고른 성장·분배를 위해 마을주민의 참여가 왜 중요한지를 인도, 태국, 서울 북촌 등 사례를 보며 논의한다. 포럼 마지막 날에는 주민의 지속가능한 일상과 관광객의 책임 있는 여행이 공존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담아 작성한 '서울선언문'을 발표한다. 행사 기간 중 참석자들은 최근 관광객 증가로 주민과 갈등이 높아진 서울 북촌을 방문해 복촌협의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이야기 나눈다. UNWTO와 서울관광마케팅은 공정관광 확대를 위해 다각적으로 협력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한다. SIFT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공식 홈페이지(sitm.or.kr/event/03.php)에서 사전신청하거나 현장에서 등록하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dkkim@yna.co.kr 
    2016-09-28 조회 : 44
  • [파이낸셜뉴스] 2016 서울관광 정책토론회 - 각 분야 전문가들, 서울 관광 진흥 위해 열띤 토론
    [파이낸셜뉴스] 각 분야 전문가들, 서울 관광 진흥 위해 열띤 토론   2016 서울관광 정책토론회  - 2016.07.15  주제 발표 및 토론자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 시간에서는 지자체, 요식업계, 숙박업계 등 각계에서 참석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질문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본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서울시 관광산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토론자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여행업 관련 분야 종사자들..정부 지원 요청1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관광 정책토론회’에는 남녀노소와 직업을 막론하고 서울시 관광산업 부흥에 관심 있는 업계 관계자 및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각자의 산업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점들을 털어 놓고 서울시의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지자체에서는 노원구청이 참석했다. 노원구청 문화관광팀 박홍성 팀장은 서울에서 비교적 관광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관광지로 변모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박 팀장은 “노원구에도 중계동 백사마을, 공릉동 꿈마을, 둘레산성길 등 서울시 공모사업에서 수상한 훌륭한 관광자원이 많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서울시에서도 사대문 인근 관광지 외에 다른 곳들에도 관심을 많이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관광문화연구원 박주영 연구위원은 “노원구뿐만 아니라 서울 각지역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관광자원이 많다”며 “서울시는 물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발굴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게스트하우스 업계와 IT 스타트업 등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두 업계는 서울시에서 각 분야에서 서로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기업들을 매칭해주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 관광객들의 편의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협회 정대준 사무국장은 “IT 스타트업 기업들은 어플리케이션 개발 등 여러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시장을 잘 몰라 정부의 지원을 받아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숙박업계는 관광산업에 대한 이해는 풍부하지만 기술이 없어 모바일을 이용한 스마트 관광에 기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 사무국장은 “기술력 있는 IT업체와 우리 업계를 연결해준다면 스마트 관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결제 등 종합 관광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 ‘티엔디엔’ 관계자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관광 시장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 진입하기는 어렵다”며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여행관련 업체들끼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네트워킹 자리를 만들어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최종적으로 관광객들에게 하나의 완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숙박업계와 의견을 같이했다.  이외에도 서울은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관광 편의가 다른 세계적 관광지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는 "관광 시장을 확대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관광 약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며 "서울은 세계 다른 도시에 비해 배려가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의 음식과 음료를 알리기 위해 소규모 레스토랑에 영문 메뉴를 지원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토론시간 좌장을 맡은 착한여행 나효우 대표는 “오늘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서울시를 비롯한 관광업계 관계자들이 서울 관광 발전의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산업 진흥위에선 내국인 역할도 중요해이날 토론 중에는 발표자들이 주기적으로 언급했던 ‘관광 진흥을 위한 내국인의 역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설명해달라는 질문도 나왔다. 서울관광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시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정작 자세한 방법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 발표자인 서울연구원 반정화 글로벌 관광연구센터장은 “간접적으로는 길가는 외국인이 길안내를 요청하면 친절하게 응하는 것에서부터 직접적으로 지역의 문화유산을 직접 지역민이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소개하는 것 등을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자였던 리얼관광연구소 윤지민 소장은 “서울시 관광정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라며 “시민들에게 서울시의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이들이 자신의 주거지의 관광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내국인이 찾는 관광지가 곧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가 된다고 강조했다. tinap@fnnews.com 박나원 기자​ 
    2016-09-28 조회 : 216
  • [한겨레] 칼럼_삶의 창 <게스트하우스를 마을 허브로> -나효우
      나효우착한여행 대표 우리에게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진 필리핀 세부에서 배로 2시간을 가면 보홀섬이 있다. 7천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 필리핀에서 보홀섬은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여 생태여행으로 유명하다. 가장 인기있는 체험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배를 타고 드넓은 바다로 나가서 마음껏 헤엄치는 돌고래를 만나는 것이다. 새벽 5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필리핀의 전통 목선 방카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여를 가면 파밀라칸섬이 나온다. 아주 자그만 섬이라 보홀섬에서 식수를 길어서 먹어야 하고 섬 주변이 돌고래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라 주민들은 돌고래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998년 필리핀 정부가 돌고래 포획을 금지하자 어부들은 당장 생계를 꾸려가기 힘들어졌다. 이때 마을여행을 기획했던 이들이 환경단체와 함께 어부들에게 섬 주변에 서식하는 10여종의 돌고래를 지키는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어부들은 돌고래의 생태를 잘 알고 있기에 훌륭한 가이드가 되었다. 돌고래를 잡지 않아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돌고래 ‘지킴이’가 되니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마을여행 개발팀은 보홀섬의 농부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었다. 오래전 해적들이 섬에 쳐들어와 마을 처녀들을 잡아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성당 신부의 제안으로 망루를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망루를 지키고 있다가 해적들이 몰려오면 소리쳐서 피신하게 된 이야기를 전문 연극배우들을 초청하여 집체연극 형식으로 만들었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이 소통하고 단합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생태여행의 보물섬과 같은 보홀섬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곳 중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보홀섬 끝자락 팡라오에 위치한 ‘꿀벌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자들의 숙소이면서 마을 주민들의 일터이다. 원래 이곳은 꿀벌과 다양한 허브를 길러서 여행자들에게 맛난 음식을 내놓기로 유명했던 곳이다. 그러다 몇 해 전 큰 태풍이 몰아쳐 꿀벌들을 잃었지만 지금도 인근 지역에서 꿀을 가져다가 손님들의 음식 재료에 쓰거나 팔기도 한다. 게스트하우스는 마을 사람들이 청소와 빨래 등 관리뿐만 아니라 여행 안내, 제빵과 다양한 기념품 제작·판매 등을 하는 마을공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 머물면서 마을에서 생산하는 먹거리와 물품을 이용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머물며 여행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게스트하우스가 단순히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여행자와 여행자를 이어주고, 마을과 여행자를 이어주는 마을의 베이스캠프, 허브로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마을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문화를 존중하며 자연을 보전하는 여행문화가 자연스럽게 여행자들에게도 전해진다. 우리에게는 지난 2011년 말에 관광진흥법을 통해 도입된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 제도가 있다. 처음에는 100곳 남짓했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도시민박업, 즉 게스트하우스는 지난 5년 사이에 서울에만 약 1천여곳에 이르며 제주도, 부산 등에서도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잘하는 곳도 있지만 과당경쟁의 폐해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관광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잘하면 지역사회에 큰 기여를 하지만 난개발로 인해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마을과 여행자들을 잇고 경쟁관계보다는 협업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면 더 바람직한 대안, 마을여행의 허브가 될 것이다.  
    2016-09-05 조회 : 123
  • [한겨레] 칼럼_삶의 창 <나랑 시간여행할래?> -나효우
    [한겨레] 칼럼_삶의 창 <나랑 시간여행할래?> ​나효우착한여행 대표 여행을 즐기다 보니 사람들이 간혹 묻는다. 어느 곳이 가장 좋았고 추천하고 싶은 여행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티브이 광고에서는 한동안 “어디까지 가봤냐”고 묻더니, 요즘에는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고 친절히 대답해준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여행은 어디였고 어떤 여행이었는가? 난 순간 여러 곳을 떠올린다. 해안선이 아름다운 남해에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고 울창한 삼나무 숲이 있는 미국의 ‘레드우드 국립공원’, 그리고 시간이 멈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라고 대답을 한 적도 있다. 여행에서 만난 대자연에 하염없이 작아지는 내가 행복하고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이 좋다. 그런데도 뭔가 충분치 않다. 더 좋은 곳도 많았던 것 같고, 더 가보고 싶은 곳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같은 여행지를 가도 누구랑 함께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맛이 다르다. 황무지, 오지를 가도 연인과 함께한다면 더없이 달콤한 시간이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팀의 정신과 전문의 로버트 월딩어는 1938년부터 75년간 보스턴의 가난하고 문제가 많은 빈민가정과 하버드 대학생 출신 가정 두 집단을 통해 “무엇이 인생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가”에 대해 연구를 했다. 아마도 행복에 관해서 가장 오래된 연구일 것이다. 해마다 두 집단을 만나서 인터뷰한 사람만 724명이다. 연구 결론은 부자가 되거나 명성을 얻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두뇌도 좋아지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오래 산다고 했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5년 <타임머신>을 쓴 이래로 수많은 영화와 소설이 시간여행을 다뤘지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좋은 벗과 함께하는 여행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여행시간은 불규칙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지한 듯이 머물기도 하고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현재와 미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힘든 시절도 좋은 벗과 함께하면 넉넉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버틸 만한 시간이 된다.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뀌고 호기롭게 도전에 나선다. 벗과 함께 미래 여행을 나설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앤디’에게는 매일이 치욕스런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교도소 도서관을 위해 기증받은 책들 중에 오래된 엘피(LP) 음반들을 발견한다. 그는 보물을 발견하듯이 소중히 음반을 꺼내어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부드러운 저녁 산들바람’이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이중창으로 나온다. 혼자 몰래 들으면 그만이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동료들에게 확성기를 틀어 음악을 들려준다. 독방 신세를 각오하면서까지 음악을 들려줄 이유가 있었을까. 교도소 안에 울려퍼지는 음악, 그리고 그의 행복한 미소가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는 16㎝ 길이의 자그마한 망치로 쇼생크 철옹성 감옥을 뚫고 19년 만에 탈옥을 한다. 동료 감옥수 ‘레드’가 “그 망치로는 600년도 더 걸릴 것 같다”는 시간을 뚫고 시간여행을 한 셈이다. 마침내 앤디와 레드는 멕시코 지와타네호에서 만난다. 가장 행복한 여행은 좋은 벗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2016-08-19 조회 : 98
  • [한겨레] 칼럼_삶의 창 <올 여름엔 즐거운 마을여행> -나효우
    [한겨레] 칼럼_삶의 창 <올 여름엔 즐거운 마을여행> 나효우착한여행 대표아침부터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산들바람 부는 시원한 계곡과 바다가 그립다. 잠시라도 낯선 마을과 길에서 생각을 비우고 바람과 새소리로 마음을 채우고 싶은 여름이다. 뜨거운 한낮 시간이 되면 시골의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 맛본 시원한 막국수와 감자전이 간절해진다. 파도 소리 들리는 마을에서 수많은 밤하늘 별들을 보다가 그대로 누워 잠들고 싶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여행은 더욱 재미있다. 수다 떨며 걸어도 좋고, 뒷모습만 바라보고 걸어도 사랑스럽다. 그렇게 여름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이렇게 즐겁게만 생각되는 여행(Travel)의 어원은 고통(Travail)이다. 교통과 정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여행은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 기근,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여행은 고통이었다. 그리고 시대가 흐르면서 낯선 땅을 찾아 떠나는 고통스런 여행은 조금씩 즐거운 떠남이 되었다. 지구별 인구가 74억명, 세계관광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한 해 12억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해외여행자들이 크게 늘어나서 지난 한 해 동안 19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던 해에 121만여명이었던 해외여행자가 지금은 20배에 달한다. 여행 자유화 초기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20여년이 지나면서 여행 문화도 성숙하게 되었다. 여행자들만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여행지의 자연과 사람들도 행복한 여행을 만드는 공정여행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한편 외국에서는 책임여행이라고 불리는 공정여행은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되고 운영하는 마을여행,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여행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중앙정부도 몇 해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관광두레’를 시작하여, 전국의 30여개 시에서 100여개 주민공동체가 ‘마을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충남 홍성과 전남 여수 관광두레를 방문했다. 홍성에서는 지역 청년들이 ‘행복한 여행나눔’ 여행사를 만들고 마을의 오래된 집을 수리하여 ‘암행어사’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청년들이 한달 가까이 땀 흘려 고생해서 가족들이 쉬어 가기 좋은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넓은 마당이 시원해 보였다. 홍성역에 내려서 ‘천년 여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청년들은 홍성의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을 찾아서 “아지트” 여행코스를 만들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교육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여수 관광두레팀들은 다문화 결혼이주 여성들 등과 함께 오래된 집을 개조하여 협동조합 식당 ‘여수 1923’을 열었다. 여수항이 개항한 1923년의 근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사진들이 식당 벽에 걸려 있다. 이 집은 여수시 여성정책과에서 오랫동안 일한 공무원이 퇴직을 하고 다문화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여럿이 모여 만든 식당이다. 짭조름한 게장 국물 맛에 숟가락을 놓을 수가 없다. 특히 해산물 돌솥밥은 여느 식당에선 맛볼 수 없는 일품요리다. 여수시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오래된 여관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게스트하우스다. 이 건물 지하는 원래 룸살롱이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주말마다 버스킹 공연이 있다고 한다. 예술인들은 이곳에서 며칠이고 그냥 지낼 수 있게 하는 주인장의 인심이 여수를 찾게 한다. 여행하는 사람이나 여행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공정여행. 이번 여름에는 조용한 마을여행으로 여름을 지내면 어떨까 싶다.
    2016-07-11 조회 : 148
  • [경향신문-연재]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1) 일본 시레토코 - 유빙…세상의 끝, 눈 시린 ‘신비’
    [경향신문] <착한여행 -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1) 일본 시레토코 - 유빙…세상의 끝, 눈 시린 ‘신비’ 지난달 26일 일본 홋카이도 시레토코 반도 원시림 속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사슴 두 마리가 무심히 노닐고 있다. 절벽 너머 왼쪽으로는 오호츠크해의 유빙이, 오른쪽으로는 눈 덮인 이오산(1563m)이 보인다.   유빙(流氷)은 반도의 코끝을 간질이기만 할 뿐 좀처럼 닿지 않았다. 러시아 아무르(헤이룽)강 하류에서부터 오호츠크해를 거쳐 1000㎞를 달려 오느라 힘에 부쳤던 탓일까. 북극 사진에서나 본 거대한 얼음덩이들을 북반구의 가장 남쪽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곳으로 떠났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동쪽 끝에 뾰족 튀어나온 시레토코(知床) 반도. 경향신문이 후원하고 착한여행사가 주최한 ‘착한여행-세계문화유산 시리즈’ 첫번째 목적지다. 북위 44도 언저리이지만, 수십 년 전에는 오로라까지 관측됐다고 한다.  ■바닷물도 민물도 아닌 ‘유빙의 맛’  지난달 24일, 출발 당일 아침에야 ‘밀당’을 계속하던 유빙이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매년 유빙 관측은 2월 중순부터 가능했다. 올해처럼 늦어진 건 1959년 유빙 관측 시작 이래 처음이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종일 걸려 시레토코 반도 중간에 자리한 샤리초(斜里町) 우토로 마을에 도착했다. 숙소 로비에는 ‘유빙의 천사’라 불리는 클리오네 수십 마리가 노닐고 있는 수족관이 있었다. 여행팀은 약 1.5㎝ 길이의 투명한 몸체를 지닌 이 작은 생명체의 모습에 빠져 피로도 잊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유빙 맞이 채비를 갖췄다. 스킨스쿠버에 쓰이는 드라이슈트를 입고 바닷가로 내려섰다. 바닷물은 온데간데없고 셔벗 아이스크림 같은 유빙이 점령군처럼 들어차 있었다. ‘까드득까드득’ 묵직한 얼음덩이들이 살을 비비는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얼어붙어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유빙에 올라서자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아래위로 울렁거렸다.  발밑의 유빙 한 조각을 뜯어내 맛을 봤다. 바닷물도 민물도 아니었다. 짠맛이 날듯 말듯 아리송했다. 이 독특한 맛은 자연의 합작품이다. 아무르강의 신선한 민물이 오호츠크해로 흘러들면서 바다 상층부의 염분 농도를 낮춘다. 사면이 육지인 오호츠크해는 본래 수온이 낮은 데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찬바람까지 더해진다. 저염분의 바닷물이 얼어붙으면서 유빙이 탄생한다. 아무르강이 몽골·중국·러시아를 거쳐 4000㎞를 흘러오면서 품었던 맛에 오호츠크해의 풍미가 더해진 셈이다. 유빙과 유빙 사이, 얇게 얼어붙은 살얼음 위에 살짝 엎드리자 ‘쩍’ 하고 얼음이 갈라진다. ‘슬로! 슬로!’ 천천히 들어오라는 안내자의 손을 잡고 몸을 밀어넣었다. 춥지는 않았다. 눈높이로 수평선까지 펼쳐진 유빙을 바라보니 거대한 얼음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여행팀의 한 참가자가 바다를 가득 메운 유빙 사이로 직접 들어가 유빙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다.​  ■개발 안 했더니 젊은이 유입 늘어 ‘착한여행’은 방문지역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리즈 첫번째 여행의 주제도 ‘관계’였다. 여행팀은 샤리초(町·한국의 읍면 단위)의 기관장인 바바 다카시(馬場隆) 정장(町長)을 만나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깊이 고민한 흔적을 들을 수 있었다. 바바 정장은 “시레토코는 원주민 아이누족의 말로 ‘세상의 끝’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며 “‘끝’이지만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전파하는 데는 ‘중심’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바 정장의 자부심에는 이유가 있다. 고도성장기였던 1970년대 부동산 투기 열풍은 이곳도 비켜가지 않았다. 과거 개척지를 사들여 대규모 숙박시설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맞서 1977년 샤리초는 시민들의 기부금을 모아 이 개척지들을 매입해 보존하자는 운동을 펼친다. 1인당 8000엔(현재는 5000엔)을 내서 100㎡를 사들이자는 ‘시레토코 100㎡ 운동’이다.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서 힌트를 얻었다. 시민들의 호응이 잇따랐다. 현재까지 6만6000명이 참여했으며 8억3600만엔의 기부금이 모였다. 매입한 토지는 471헥타르(4.7㎢)에 이른다.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시레토코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자연환경을 보존하자는 주장은 종종 개발로 경제적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지역민의 반대에 부닥친다. 바바 정장은 “갈등은 있었지만 꾸준히 설득했다”고 말했다. 잘 보존된 자연이 관광자원화되면서 일거리도 늘었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고 정착하는 일도 생겼다. 샤리초의 인구는 1만2000여명에 불과하지만 홋카이도에서 인구 감소율이 가장 낮다. 시레토코는 바다와 육지의 생태계가 바로 맞닿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불곰이 해안에서 산까지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곳은 시레토코뿐이라고 한다. 여행팀은 설피를 신고 수십 센터미터의 눈이 쌓인 시레토코 원시림을 걸었다. 안내를 맡은 남녀 현지인 2명은 도쿄와 규슈 출신이라고 했다. 둘 다 32살의 젊은 나이였다. 젊은이들이 많다는 바바 정장의 말이 떠올랐다. 원시림에 진입하자 시레토코 자연환경의 특징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 언덕이 아이스크림처럼 예쁘다 싶더니 바로 너머가 100m 넘는 절벽이다. 절벽 너머 왼쪽에는 유빙으로 뒤덮인 오호츠크해가, 오른쪽에는 해발 1563m의 눈 덮인 이오산이 펼쳐져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사슴 사체를 먹는 여우를 발견했다. 여우는 앙상하게 드러난 사슴 갈비뼈 사이로 희끗희끗 얼굴을 내비쳤다. <동물의 왕국>을 맨눈으로 보는 듯했다. 불곰이 나무를 올라가기 위해 발톱으로 마구 할퀸 흔적도 있었다. 한때는 불곰도 멸종 위기에 처했으나 서식환경이 회복되면서 개체수가 늘었다.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여야 할 정도다. 일본 홋카이도 노쓰케(野付) 반도 앞바다가 얼어붙어 마치 '소금사막'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일본 홋카이도 노쓰케(野付) 반도 앞바다의 얼음 위에 올라간 여행 참가자들이 원근감을 이용한 착시효과를 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계현씨 제공​ ■젊은 사람, 외지 사람, 바보여행팀은 시레토코 반도의 ‘서쪽 해안’인 샤리초에서 ‘동쪽 해안’인 라우스초(羅臼町)로 건너갔다. 이케가미 미호(池上美穗) 라우스초 관광협회 사무국장이 안내를 맡았다. 인구 5000명 남짓의 한산한 어촌으로 보였지만 어획량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고급 연어와 다시마 생산지로 해산물이 풍부하다.라우스는 1년 내내 시기별로 범고래와 밍크고래, 바다사자와 물범 등을 돌아가며 볼 수 있는 동물의 낙원이다. 육지에 서서 고래를 직접 관측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여름철에는 거대한 향유고래를 볼 수도 있다. 여행팀도 마을의 나무에 동네 참새처럼 수북이 앉은 흰꼬리수리와 참수리 무리를 쉽게 볼 수 있었다.이케가미 사무국장은 삿포로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던 ‘도시 여성’이다. 5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새 출발을 모색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관광협회 모집 공고를 봤다고 한다. 그는 큰 관광회사들이 좀처럼 찾지 않는 이곳에서 어시장 투어와 어부 체험 등의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한다고 했다. 여행팀이 점심식사를 하러 들른 식당에서도 도시 출신인 젊은 여성 2명이 설립한 작은 여행사가 ‘성게 알 까기’ 체험을 진행 중이었다. 이케가미 사무국장은 “자연환경이 열악하지만 역시 사람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며 “부모님까지 모시고 올 계획”이라고 했다.일본에는 지역을 바꾸는 사람은 ‘젊은 사람’, ‘외지사람’, 그리고 ‘바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가장 동쪽 끝 작은 고장인 샤리초와 라우스초에서 그 말을 실감했다.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긴 고리 속에서 내가 서 있는 곳을 한 번쯤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 시레토코 반도다.  2016.03.09  글·사진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2016-03-14 조회 : 304
  • [경향신문-연재]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2) 라오스 보러 갔다, 사람을 담아 왔다
     [경향신문] <착한여행 -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2) 라오스 보러 갔다, 사람을 담아 왔다라오스의 옛 수도 루앙프라방에서 오전 6시부터 시작되는 승려들의 탁발 행렬. 루앙프라방의 모든 절의 스님들이 나서는 탁발은 일종의 공양으로 여행객도 참여할 수 있다.땡과 짜이는 열두 살 동갑내기다.둘은 지난달 26일 오후 8시, 라오스 방비엥의 작은 마을 나두앙의 마을회관에서 열린 축제에 참가했다. 마을회관 너른 마당에 한국과 유럽인 여행객 20여명이 들어섰다. 머리카락이 성인 남성 허리춤 정도까지 자란 아이 50여명과 여행객은 서로 어울려 1시간 동안 전통춤을 췄다. 여행객을 환영하는 일종의 작은 축제였다.땡과 짜이는 간단한 영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안다. “이루미 모에요?(이름이 뭐예요?)” “안녕휘 가쎄요(안녕히 가세요)”를 연신 내뱉었다. 낯선 외국인과 어울리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땡은 “학교에서 배운 춤과 노래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 좋다”며 “나하고 겉모습이 다른 손님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재밌다”고 말했다.짜이가 여행객을 반기는 이유는 또 있다. 짜이네 집으로 홈스테이를 하러 온 여행객들과 대화하다보면 영어, 한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짜이는 “학교에서 책 읽는 공부 말고 여행객들과 어울리며 배우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비엥의 ‘나두앙 스쿨’.​땡과 짜이가 낯선 이방인들과 마주하기 시작한 건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대나무로 지은 건물을 학교로 쓰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라오스 나두앙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방비엥 ‘나두앙’ 마을의 작은 실험 방비엥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다. 방비엥은 원래 자연 지형지물을 이용한 여행지로 유명하다. 다이빙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블루라군은 석회물질로 인해 물이 푸른 빛을 낸다. 양편의 나무 사이로 와이어를 설치한 뒤 트롤리(Trolley)를 와이어에 걸어 이동하는 ‘짚라인’도 산악지형을 이용해 만들었다.마을축제에서 관광객들과 어울리는 땡(가운데)과 짜이(오른쪽에서 두번째).​나두앙은 방비엥의 작은 마을이다. 오전 5시가 되면 닭과 소와 말이 거리에 나와 잔뜩 배설물을 싸놓고 제집으로 돌아간다. 라오스의 여느 농촌 마을과 다름없는 풍경이다. 141가구에 총 1258명이 사는 이곳에 학교는 ‘나두앙 스쿨’ 딱 하나이고, 학생 95명에 선생님 9명이 있다. 이 작은 마을에 변화가 온 것은 2012년 마을의 경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홈스테이를 시작하면서부터다.이날 행사를 연 심 말리(29)는 “홈스테이를 한 뒤 조금씩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각 가정에서 한 달 수익의 5%를 마을기금으로 내놓는다”며 “나두앙 마을에 오는 여행객에게 단순히 관광·휴양이 아니라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나두앙 마을에선 현재 아홉 가정이 홈스테이를 한다. 6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농번기에만 반짝 소득이 오르고, 그외 시기에는 여전히 넉넉지 못한 삶을 산다. 나두앙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종종 쓰지 않는 학용품이나 문구류 등을 기증한다. 나두앙 마을 주민들은 원칙을 세웠다. 기증받은 물품을 절대로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하지 못하게 했다. 말리는 “아이들이 한 번, 두 번 받다보면 여행객에게 ‘1달러’를 달라는 식으로 구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날 오후 9시, 축제가 끝나자 땡과 짜이는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여행객들과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10분 넘게 “안녕히 가세요”와 “굿바이(Good Bye)”를 외쳤다.■‘흥정’도 인간미 있게방비엥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 차로 5시간 정도 이동하면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유네스코는 1995년 루앙프라방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루앙프라방에는 규제가 많다.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2층 이상 올릴 수 없고, 간판도 일정한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루앙프라방에서 4년째 거주하고 있는 싸이타(32)는 “루앙프라방에서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나 대형마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민들은 대부분 새벽 시장에서 그날그날 하루 먹거리를 사간다”고 말했다.해질 무렵에는 왓 마이 사원 근처 도로에 1㎞ 남짓한 야시장이 열린다.전통의상, 수첩, 접시, 라오스 커피 등 다양한 물품을 판다. 상인들은 7㎡(2평) 남짓한 공간에 돗자리를 펴고, 한손에는 계산기를 들고 있다. 여행객들과 흥정할 때 쓰는 계산기다. 야시장에는 ‘정가’가 없다. 흥정 자체가 이곳의 문화이자 전통이다.그런데 딱 한 곳, 몽노가 엘리아(16)가 운영하는 ‘잡화점’에만 정가가 붙어 있다. 엘리아는 소금, 차, 원두 등을 판다. 원두는 주먹만 한 분량에 2만낍(약 2800원), 소금은 1만2000낍(약 1700원)이다. ‘왜 정가표를 붙였느냐’고 묻자 엘리아는 대답 대신 안내문을 손으로 가리키며 2000~3000낍을 깎아줬다. 안내문에는 한국어로 ‘한국인은 상품당 1000낍 할인해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엘리아에게는 형이 2명이 있다. 모두 대학에 다닌다. 아버지는 다리에 장애가 있어 일을 못하고, 어머니는 종이 만드는 작은 공장에 나간다. 엘리아가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엘리아는 “형들이 가격표와 안내문을 만들어줬다. 가격을 어느 정도 정해 놓고 흥정을 해야 서로 신뢰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형들이 말해줬다”며 환하게 웃었다.이번 라오스 여행에 동행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것은 ‘사람’이다. 라오스도 최근 10년 사이 급격하게 문명이 유입됐다. 수도 비엔티안에선 꼬마 아이도 스마트폰을 쥐고 있고, 방비엥·루앙프라방을 가로지르는 강가엔 대형 리조트와 각종 위락시설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여행지 어딜 가도 라오스에서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났다.  ■이건 꼭 보고 오자 - 탁발 해보고, 쾅시 폭포 보고…몽족 닮았다며 5년 뒤에 또 보자네 라오스의 옛 수도 루앙프라방에는 볼거리가 많다. 오전 6시부터 승려들의 ‘탁발’ 행렬이 이어진다. ‘탁발’은 일종의 공양으로, 루앙프라방에 있는 모든 절에서 승려들이 나와 찹쌀밥을 비롯한 다양한 먹을거리를 받아간다. 현지인이 아닌 여행객도 참여할 수 있다. 푸른 빛깔의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지는 ‘쾅시 폭포’에도 사람이 몰린다. 쾅시 폭포에서 차로 20분 이동하면 몽족 70여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라오스의 인구 구성은 크게 저지대의 ‘라오룸’, 산 중턱에 사는 ‘라오퉁’,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라오숭’으로 나뉜다. 몽족은 라오숭의 대다수를 구성한다. 몽족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편에 섰다가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이때 15만명의 몽족이 라오스를 떠난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도 태국에는 몽족 난민캠프가 있다. 지난달 29일, 니케짜(63)는 어김없이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었다. 양옆에는 두 손녀딸 나모리우(13)와 마이라(12)가 일을 거들고 있었다(위 사진). 니케짜는 몽족 마을에 21년 넘게 살았다. 12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이 중 8명이 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니케짜는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몽족하고 닮았다”면서 농담을 건넸다. 그는 “예전에는 몽족의 운명이 위태로워 여행객들에게 1년 뒤에 다시 라오스를 찾아도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그래도 조금씩 생활이 안정돼 5년 뒤에 다시 한번 날 보러 라오스에 오라고 농담을 던진다”고 덧붙였다. 니케짜는 몽족의 삶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했지만 손녀 나모리우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지금껏 할머니 손에 크고 있다. 나모리우는 “매일 할머니 곁에서 바느질도 하고 여행객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이 재밌다”면서 “여행객들과 사진을 많이 찍어서 내 얼굴은 아마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을 것”이라며 웃었다.   2016.04.20 라오스 | 글·사진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2016-04-21 조회 : 153
  • [경향신문-연재]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3) 캄보디아 - 가난을 보셨나요? ‘공존의 삶’이 있어 미소가 가득합니다
    [경향신문] <착한여행 -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3) 캄보디아 - 가난을 보셨나요? ‘공존의 삶’이 있어 미소가 가득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의 해질녘 풍경. 제주도 두 배 크기인 톤레삽 호수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까지 건기에는 물이 줄어 사람이 걸어서 오갈 수 있다.​  캄보디아 밀림 속 앙코르와트는 언제 ‘발견’됐을까. 19세기 중반 프랑스 식물학자 앙리 무오가 여행기를 남겨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무오는 “솔로몬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가 세웠을 법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에 비견될 만한 곳…. 이 나라가 처해 있는 야만적인 상태와 슬픈 대조를 이룬다”고 했다. 그는 이전의 서양인 여행자들처럼 크메르인이 앙코르와트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로마와 같은 고대문명이 세운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그들의 시야에 정글의 나무와 폐허는 들어왔지만, 원주민들은 ‘배제’되었다.   현대의 여행자들은 어떨까.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호텔 리셉셔니스트와 툭툭 기사, 가게 점원, 가이드가 사실상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의 전부다. 그리고 좋은 곳만 보고 떠나간다. 현지 사람들은 여전히 시야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반면 ‘착한 여행’은 느끼고 체험하는 여행이다. 여행지의 사람들과 부대끼고 그들의 삶을 깊이 살펴보는 ‘다른’ 여정을 캄보디아에서 경험했다.  ■ 꼭스럭의 ‘천성급’ 홈스테이 밤 11시(현지시간) 캄보디아 시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원 달러 빌, 원 달러 빌.” 공항 직원이 비자는 내주지 않고 웅얼댔다. “소리(sorry)?” 여행자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자, 직원은 “일 달러, 일 달러”라고 한국말로 짜증을 냈다. 시엠립 공항은 한국인 여행자에게만 1달러를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이런 관행은 성질 급한 한국인들이 빠른 입국 수속을 위해 뒷돈을 주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인 바트 옛(28)이 “아이고~ 미안합니다”라며 연신 사과했다. 캄보디아는 아직 한국의 1970년대 수준이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몸둘 바를 몰라했다. ‘장(腸)마사지’라고 부르는 열악한 도로망이며, ‘호랑이 연고’로 상징되는 낙후된 의료 등 캄보디아의 빈곤을 설명할 거리는 많다. 건조한 관공서 언어에도 가난은 묻어 있다. ‘어린이들에게 사탕이나 돈을 주지 마시오.’ 아이들이 구걸에 나서면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캄보디아 시엠립 인근 꼭스럭 학교에서 여행자들이 어린이들에게 학용품과 과자를 나눠주고 있다.​ 착한 여행의 첫 일정은 ‘꼭스럭 학교’ 방문이었다. 시엠립 시내에서 30여분 거리인 작은 언덕(꼭스럭) 마을. 오후 5시 하교를 앞둔 오후반 아이들이 학교 정문에서 여행자들을 맞았다. 카메라를 보고 손으로 V 자를 그리며 웃는 모습은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선물로는 과자와 학용품 그리고 ‘칫솔’을 준비했다.  1970년대 크메르루주 정권의 대량학살과 이어진 내전으로 캄보디아는 ‘죽음의 땅(킬링필드)’이 됐다. ‘안경을 썼다’(지식인)거나 ‘배가 나왔다’(부자)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는 시대였다. 그렇게 총인구의 5분의 1이 사라졌다. 야만은 단절을 낳았다. 후대에 지식을 전수할 계층이 없어진 것이다. 지금도 의사나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위생교육이 되지 않아 칫솔 등 위생용품이 필요하다.  다들 눈은 포도알처럼 큰데 체구는 작다. “쑤어 쓰데이!(안녕하세요!)” 아이들이 줄지어 서더니 인사를 했다. 준비한 물품을 나눠주자 표정은 밝은데 조용하다. 선생님이 흩어져도 좋다고 하자 그때서야 아이들은 “꺄아아악” 환호성을 질렀다. 수줍음이 많아서 좋다는 표현을 못했던 것이다. 이내 친해져 아이들은 “어쿤 쯔란쯔란(감사합니다)”이라고 인사했다. 이전에도 한국인 봉사자들이 왔던 곳으로 외국인을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학교를 찾아오고, 도움을 ‘받는 일’이 불편하지 않을까. 교장 예 럼(49)은 “부담이나 불편을 느끼기보다는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 럼은 1988년 이 학교에 일반 교사로 부임했다. 초토화된 학교에는 움막 2동만 있었다. 비정부기구(NGO)의 도움으로 20여년 만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학교는 놀이터를 갖추고 있고, 마을 축제를 열기도 한다. 쓸모없어 보여도 학교 시설이 필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학교에 붙어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달 수입이 100달러 남짓인 캄보디아 가정에서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것은 당장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되는 무용한 일이다. 이 때문에 총 290여명이 다니는 학교에서 한 반 30~40명 중 4~5명은 늘 결석을 한다. 예 럼은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보고 마음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세기 말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타프롬 사원.​  열대지역에서 쓸데없는 움직임은 낭비다. 해질녘 꼭스럭 마을은 밥 짓는 연기와 퇴근길 오토바이가 피우는 먼지가 거리를 채웠다. 조용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은 해먹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는 일 없이 소일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주민들과 함께했다. 꼬치구이, 계란부침, 파파야를 넣은 닭고깃국, 쌀밥 그리고 앙코르비어가 차려졌다. 보통 반찬 하나 놓고 밥을 먹는 캄보디아에서는 생각지 못한 성대한 만찬이었다. “쪼르께오!”라는 건배 제의에 “건배~”라는 화답이 이어졌다. 오후 8시가 되자 TV 불빛만 보일 뿐 마을은 어둠에 잠겼다.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 2층집 나무 바닥에 모기장을 치고 가만히 누웠다. 너무 더워 물을 끼얹고 누웠는데 금세 땀에 젖었다. 창밖에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뒤척이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홈스테이를 함께한 여행자들이 웃으며 말했다. “호텔이 사성, 오성급이면 꼭스럭은 천성급이다.”  ■ “열심히 살지 말고 잘사세요”  ‘앙코르와트’를 단일 유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시엠립에 ‘앙코르 유적’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12세기 무렵 동남아시아를 석권한 전성기의 앙코르 제국은 사원 1200여개를 세웠다. 하지만 13세기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제국은 15세기쯤 완전히 멸망해 화려했던 도시와 함께 정글 속에 묻혔다. 남은 유적 중에선 ‘앙코르와트’ ‘앙코르톰’ ‘타프롬’ ‘반티에이스레이’가 유명하다. 왕의 도시인 앙코르톰에 있는 바이욘 사원. 54개의 탑에 200여개의 부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크메르의 미소’로 유명하다.​ 타프롬은 앤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레이더>에 신비한 모습으로 등장해 유명해졌다. 흐르는 액체처럼 건물 사이에 뿌리를 박은 벵골보리수 등 거대한 나무들이 무너져가는 사원을 붙잡고 있는 광경은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타프롬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지 많을 걸 생각하게 했다.  사원을 복원하려면 나무는 베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직 공무원으로 30여년 동안 복원에 참여한 인 팔리(58)는 “나무도 이미 사원의 일부”라면서 “발견 당시 모습을 역사로 남기기 위해 두기도 하고, 때로는 뽑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때 그때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 이를 위해 인도, 프랑스,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이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사원은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지만 세계유산이기 때문에 모두의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복원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빈국 원조에 나서야 하는 이유와도 맞닿는, 설득력 있는 대답이었다. 물 위에 비친 앙코르와트의 아름다운 모습도, 분위기 있는 펍과 클럽이 늘어서 있는 여행자거리의 밤도 캄보디아 여행의 좋은 추억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본 캄보디아는 여러 가지 의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고된 삶을 미화하는 것은 19세기 탐험가들과 같은 또 다른 ‘대상화’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캄보디아인들은 웃음이 넘쳤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여행 내내 캄보디아의 정치부터 경제까지 속이야기를 시원스레 들려준 바트 옛은 10년 뒤엔 부자가 돼 ‘공짜’로 안내해주겠다며 그때까지 건강하시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뜨끔한 한마디를 남겼다. “열심히 살지 말고 잘사세요!” 글·사진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2016-05-16 조회 : 101
  • [경향신문-연재]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4) 산티아고 순례길
    [경향신문] <착한여행 -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4) 산티아고 순례길 ㆍ이 힘든 길 왜 걸을까?…그 길 위에 사람이 있더라​ 지난 5월22일(현지시간) 순례자 두 명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사리아~포르토마린 구간을 걷고 있다.​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걷기 위해 비행기를 14시간이나 타고 가야 한다고? 이건 ‘여행’이 아니라 ‘고생’ 아닐까. 한국에도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은데, 수천㎞ 떨어진 외국까지 가는 건 낭비 아닐까. 갈림길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석. ​일정표를 받아본 순간 ‘헉’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지난 5월20일 오후 1시 인천공항을 출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9시간 비행. 2시간을 기다려 비행기를 갈아탄 다음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5시간 비행.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드리드에서 이 여정의 출발지인 사리아까지 가려면 또다시 기차를 6시간 타야 한다. 이동하는 데만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셈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 9세기 무렵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의 유해가 수습됐다고 알려진 후 1000년 동안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길. 제주 올레의 모델이자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길. 해마다 10만여명이 찾아와 몸은 힘들었어도 마음은 행복했다고 말하는 길. ‘착한여행-세계문화유산 시리즈’(경향신문 후원, 착한여행사 주최) 네 번째 목적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사전 지식은 대략 이 정도였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도 이 길이 나왔던가.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옆 좌석의 여행 참가자 한 사람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10년 만에 코엘료의 <순례자>를 다시 읽었어요. 코엘료는 길을 다 걷지 않고 중간에 돌아왔다고 하죠? 왜 그랬을까요?” ​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찍고 있는 순례자. 사리아에 도착한 것은 21일 오후 7시(현지시간). 사리아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이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가는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길은 프랑스 남부 생 장 피에드 포르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카미노 데 프랑세스)’인데, 사리아는 이 프랑스 길이 지나가는 곳이다. 이곳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는 117.3㎞. 프랑스 길 전체(약 800㎞)를 걷자면 적어도 30일이 걸리지만, 100㎞만 걸어도 순례길을 걸었음을 입증하는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자연의 선물, 산티아고 순례길 22일 오전 3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사리아에 도착한 전날 비가 내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내부는 눅눅했다. 알베르게는 한 방에 많게는 100여명이 남녀 구분 없이 2층 침대에서 자는 공동숙소다. 일부는 화장실이나 샤워실까지 남녀 공용이다. 숙박비용은 10유로(1만3000원) 정도. 알베르게 이외에 ‘펜션’이라는 명칭이 붙은 좀 더 안락한 숙소들도 있다.  약간의 한기가 감도는 침대에서 잠을 설치다 숙소 밖으로 나오자 달빛 아래 잠긴 세상이 고요했다. 날이 밝아오자 수도원의 적요함은 청아하고 농밀한 소리로 우는 새소리들의 합창으로 대체됐는데, 풍성한 청각적 쾌감이 다른 감각들까지 일깨웠는지 코끝에 닿는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알베르게의 공동 주방에서는 부지런한 외국인 순례자들이 이날 하루치의 순례를 위해 배낭을 정비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편으로는 자연에 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 다투는 여정이다. 여행팀은 매일 평균 20㎞를 걸었다. 첫날인 22일과 23일, 날씨는 ‘환상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밝고 부드러운 봄 햇살이 팔다리에 적당한 탄력을 공급했다. 숲속에서는 개울과 나무와 작은 돌들이 만들어내는 오밀조밀한 풍경이 매 순간 다른 형태로 나타났고, 숲 밖에서는 푸른 대지 너머 탁 트인 시야가 가슴을 뚫어줬다.  현지에서 구입한 우비가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철저하게 깨졌다. 아침부터 1시간가량씩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빗줄기는 우비 없이는 걷기 힘들 정도였다. 알고 보니 이런 날씨가 이 지방의 일상이었다. 이곳의 나무들이 왜 녹색 이끼를 조끼처럼 두르고 있는지 온몸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몇 차례 날씨의 변덕을 경험하고 나면 비를 맞는 것조차 싱그러운 경험으로 각인되는 것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매력이다.  고도성장의 엔진이자 부산물인 토목과 건설과 부동산의 나라에서 온 순례자의 눈에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아름다운 길에 숙박과 휴식을 위한 시설이 최소한으로만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제주 올레에서 해마다 3개월가량 머물렀다는 정우진씨(39)는 “한국이었다면 수백개의 게스트하우스와 유흥업소가 지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엔 카미노’, 길 위의 사람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길’이란 뜻의 이 말은 스페인어 인사인 ‘올라(Hola)’와 함께 순례길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은 대략 세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산티아고 순례는 종교인으로서 스스로에게 지운 자발적 의무에 가깝다. 다른 한 유형은 실존적 고민을 안고 떠난 이들이다. 인생의 결정적 고비에서 벽에 부딪힌 이들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로지 자신과 자연만이 있는 이 길을 걸으면서 해답을 찾는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길 자체의 매력은 수많은 트레킹 마니아들의 발길도 잡아끈다. ‘부엔 카미노’는 서로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격려와 위로, 공감과 연대의 인사말이다.  첫날 포르토마린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한 영국 노인은 돌담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세례명인 ‘파도바의 안토니오’라고 소개했다. 이 순례길을 찾기 위해 아내와 함께 10년 동안 준비했다는 그는 돌담에 앉은 천사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셋째날 길가에서 50대 한국 여성을 만났다. 혼자서 800㎞를 걷고 있다는 그는 2년 전에도 산티아고 순례를 계획했지만 직장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지난 4월에야 스페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길에서는 세 가지가 전부예요. 먹고 자고 걷고. 그리고 하나 더 있죠. 깊은 생각.” 그는 “길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걷다 보면 항상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잠깐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고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으면서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신기한 건 걷다 보면 또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은 마지막 날이었다. 다른 일행보다 조금 이른 오전 5시 오 페드로조의 숙소를 나서자 아메리카 원주민의 얼굴을 한 노인이 양팔을 돌리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프리오?” 프리오? 무슨 뜻이지? 프리즈(freeze)? 춥냐고? “노.”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장서 걸었다. 숲속으로 들어가자 나무가 달빛을 차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전등으로 길을 비췄다. 그가 없었더라면, 인적 없는 숲속의 어둠을 뚫고 지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표지판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손짓으로 방향을 일러줬다. 해가 뜨자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한 시간쯤 남겨놓은 언덕길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웃음 노트와 펜을 건네자 그가 이름과 나이를 적어줬다. “Gullermo Torres. 69. Bolivia(길레르모 토레스. 69. 볼리비아).”  26일 오전 11시 무렵 도착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은 장엄했고, 순례자들을 위한 대성당의 정오 미사는 화려했다. 그러나 대성당의 장중함과 미사의 아름다움은 길을 걷는 동안 마주친 이들의 한결같이 평화롭고 사색적인 얼굴과 그들이 걸어온 싱싱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견줄 바가 아니다. 광장에서는 마침내 여정을 마친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은 축제를 벌였다. 순례자들이 길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순례자 인증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렇게 믿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에 가야 할 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제때 그곳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순례자>) 출처 :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16-06-23 조회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