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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한옥스테이] 300년 역사의 숨결이 서린 경주 최부잣집에서의 하룻 밤 #최부자스테이
여러분, 부자 되세요! 경주 최부잣집만 같은 부자 되세요 !!

20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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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1년 넘게 여행길이 막혔다답답하고 울적하다. 코로나 시대에 감염, 확산 위험을 피해 여행할 방법은 없을까?  이름난 곳을 피해서, 붐비는 때를 벗어나, 혼자 또는 가족과, 조용하게, 차분하게 다녀오면 좋겠다고 여긴다. 벚꽃 피는 철 경주는 얼핏 그런 기준에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좋은 곳을 찾았다경주의 명문가 최부잣집 고택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이  12대에 걸쳐 지역에서 존경받으며 부요함을 이어 왔는지는 대체로 알고는 있었다. 몇 해 전에도 경주 여행길에 교촌 마을에 들러 최부자 고택을 둘러보기는 했다. 수박 겉핥기였다. 이번엔 달랐다. 잘 익은 수박을 쪼개 아름답게 붉은 속살의 결을 들여다보았을 뿐만 아니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달콤하고 시원함을 한껏 누린 셈이다. 최부자 고택 대청에 올라 앉았다.  존경받는 부자의 자취와 정신에 흐뻑 빠져들었다. 최부잣집 8대 최기영은 경주로 이사하면서 집터의 흙을 파내고 기둥을 잘랐다. 퍼낸 흙으로 후원을 돋웠다. 이웃한 향교를 존중해 그보다 지붕을 낮추기 위해서였다니, 겸허함과 배려심이 돋보인다. 대청 뒷문으로 보이는 후원은 방문객의 기념 사진 포인트다.  

채 부엌의 부뚜막과 가마솥엔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는 가훈을 실천하느라 분주했을 안주인과 아낙들의 노고가 배었다. 많을 때는 240, 대개 하루 평균 100명의 손님을 치렀다고 한다. 오고 가고 유숙하는 손님들을 통해 한양과 각지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최부잣집 사랑채는 정보 포털쯤 되는 셈이었다.

 

 주위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엔 땅을 사지 말라 남의 불행이나 고통에 눈감지 말고 헤아리고 보살피는 배려의 마음이 담긴 가훈이다. 지주들은 대개 뒷전에 앉고 마름을 두어 소작인을 감독하는데 최부잣집엔 마름이 없었다고 한다. 지주 위세를 배경으로 요즘말로 갑질하는 마름이 적지 않았을 당시로선 남다른 경영방식이었겠다.소작료가 수확량의 7, 8할이 보통이던 시절에 최부잣집은 5 5로 갈랐다니, 소작농민들은 그저 감읍할 밖에 없었을 터다. 농업 노동자들이 흘리는 땀의 가치를 높게 여기고 그들의 좋은 이웃으로서 더불어 살아온 덕망이 어떠했을지 마음에 와 닿는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상생(相生)의 정신이다. 기업은 덩어리를 가져가고 현장의 택배, 음식배달 노동자들은 부스러기를 주워가는 플랫폼 노동 시스템과 절로 비교된다.이름뿐인 대한제국 시절 나라가 진 빚을 갚자고 일어선 민초들의 국채보상운동에 최부자 가문이 앞장섰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위험을 무릅쓰며 독립운동에 재산을 바친 일, 광복 후에 저당잡힌 일부 재산을 되찾자 민립 대구대학을 세워 인재 양성에 나섰고, 나중엔 우여곡절 끝에 재단 운영권마저 내려놓은 사연에 이르기까지 최부잣집 내력은 우리 현대사의 일부를 이룬다.

 

3대 가는 부자 없다는 말도 있지만, 최부잣집은 12대를 이어오며 선행을 폈고, 격동기에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전 재산을 내놓으며 희생했다. 최부잣집 고택 사랑채에 걸린 편액처럼 크게 어리석고 둔한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고택에서 피어난 최부잣집 정신은 21세기 우리에게 깨끗한 부()란 어떤 것인지, 부자는 부자로되 존경받는 부자와 멸시받는 부자는 어떻게 다른지 알려준다. 경주 최부잣집 고택 1박여행은 깨우침과 배움의 기회다. 교촌 주변 계림과 첨성대, 고분을 걸으며 듣는 해설은 플러스 알파의 경주 문화역사 현장 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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